fjrigjwwe9r6board_data:content <그림1> 부부1, 1953,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그림2> 부부2, 과천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위작과 졸작 사이 - 이중섭작 <부부>와 여러 문제작을 분석한다
감정(鑑定), 위작의 백신
이중섭 작품의 위작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부잣집에 도둑이 몰리듯이, 대가가 나오면 위작이 나오기 마련이다. 위작의 역사는 미술의 역사와 같이 했고, 진위논쟁은 외국에서도 비일비재한 일이다. 미술은 음악 같은 장르에 비해 독창성을 많이 요구하지만, 그것을 보고 베끼는 것은 비교적 쉽다. 우리 사회가 모두가 행복하게 잘사는 지상낙원이 아닌 한 이러한 허점을 파고드는 바이러스 같은 존재들은 나타나기 마련이다. 위작은 미술의 바이러스이다. 이런 바이러스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면역을 강화시키고 백신을 개발해야 한다. 이 문제로 미술시장이 흔들린다는 것은 우리가 아직 위작에 대한 면역이 약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감기가 유행해도 돌아다닐 사람은 다 돌아다니게 되어있는 법이다. 이번 이중섭, 박수근 위작 사건은 유행 독감 정도로 생각하고 의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조류 독감이라는 엄청난 파워를 지닌 바이러스의 위협을 받고 있다. 이번 사건은 문화적 조류독감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경종일 수 있다. 21세기는 기술의 시대가 아니라 문화의 시대이다. 21세기형 전쟁은 문화 전쟁이고, 그 무기는 독창성이 될 것이다. 최근 문제 되고 있는 저작권과 짝퉁 논쟁은 문화 전쟁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시사해주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해하고 이에 대한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한다. 그것은 문화적 독창성이라는 무기개발과 그것을 지켜줄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것이 문화적 조류독감에 대한 백신 개발이다. 미술품 위작에 대한 백신은 바로 ‘감정(鑑定)’이다. 감정은 작가에 대한 미술사적 연구와 현장 경험이 종합되어야 가능한 미술 연구의 최고 단계이고, 감정문화야 말로 그 나라 미술 연구수준을 보여주는 척도가 된다.
그러나 작가가 사망하고 출처를 모르는 상태에서 진위를 감정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전문가들마저 실수하는 경우가 많다. 한 예로 베르메르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그리스도와 간통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은 미술계 거물들과 학자들이 극찬하고, 권위 있는 미술관에서 최고가로 구입하여 전시되어 왔는데, 제2차 세계대전 후 메헤렌이라는 화가가 제작한 것임이 밝혀져 유럽을 발칵 뒤집어 놓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소정 변관식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내금강 옥류천>이 유홍준(現 문화재청장), 이태호 교수 같은 유명 학자들에 의해 극찬을 받으며, 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한국회화 100년>의 도록 표지에까지 실렸으나, 변관식의 제자 조순자씨의 1963년 국전 입선작임이 밝혀져 큰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은 감정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작업인지를 말해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심지어 소정 같은 작가는 작가가 살아있을 때 자신도 위작에 속아 사인을 해준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감정을 단순한 진위나 O,X의 문제로 단정해서는 안 되고 진지한 연구가 병행되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자신의 연구를 토대로 소신 있는 주장을 개진하고 건전한 토론문화를 만들어가는 일반인들은 이 과정을 지켜봐주어야 한다. 성숙된 감정문화가 자리 잡기 위해서는 일반인들의 관심과 인식이 매우 중요하다. 전문가들이 운동선수라면 일반인들은 관중이다. 수준 높은 관중은 게임을 즐기고, 승부의 결과보다 과정과 내용을 중시한다. 이런 수준 높은 관중문화가 스포츠의 수준을 끌어올리듯이, 일반인들도 관심을 갖고 토론의 과정과 내용을 지켜봐 주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감정(鑑定)’을 ‘감정(感情)’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인맥으로 얽힌 우리 화단에서 전문가들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고, 일부 힘 있는 사람의 권위와 독단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어 버린다. 그리고 일반인들은 결과에만 집착하고 실수를 비난한다. 신이 아닌 한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다. 우리가 비난해야할 것은 실수가 아니라, 과정을 거치지 않는 권위적 행태와 결과에 승복할 줄 모르는 비양심적인 태도이다. 우리가 성숙한 감정문화를 정착하려면 어떤 공인된 제도를 만들고 경제적 지원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시급한 것은 인맥의 끈에서 벗어나 내용에 의한 건전한 토론문화를 정착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선입견의 장애
그런 차원에서 필자는 2003년 3월호 art지에 ‘위작과 졸작사이’라는 글을 통해 과천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중섭의 <부부>(그림2)가 위작 가능성이 있다는 글을 정중하게 개진했다. 그리고 이중섭이 그렸다하더라도 자기 작품을 보고 베낀 근사위작이므로 평가를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주장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었고, 이번 광복60주년을 기념하여 과천현대미술관이 주최한 [한국미술 100년]전에 다시 관례적으로 출품되었다. 진위논란을 떠나서 과연 이 작품이 한국미술을 정리하는 사상 초유의 전시회에 출품될 만큼 뛰어난 작품인가?
이 작품의 외양상 경력은 매우 화려해 보인다. 이 작품은 현대화랑이 1972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하여 그동안 30년 이상 아무 문제없이 주요전람회에 출품되어 왔다. 그러나 국내 굴지의 메이저 화랑이 기증했다는 점, 그리고 다른 곳도 아닌 가장 권위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이라는 점, 그동안 주요 전람회에 출품되어 왔다는 사실, 그리고 이중섭이라는 국민작가의 작품이라는 점 등이 선입견으로 작용하여 우리의 눈을 가려왔을 수 있다. 감정의 최대의 적은 선입견이다. 자기가 한 번 쓴 글은 오자를 발견하기 쉽지 않듯이, 한 번 선입견이 생기면 작품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그러한 선입견을 제거하고 순수하게 이 작품을 보면 필력도 힘이 없고 골격파악도 못한 매우 치졸한 작품이다. 만약 이 작품이 최근 발견되어 선입견 없이 전문가들의 감정을 거친다면 안목 있고 양심 있는 감정가라면 대부분 쉽게 위작으로 판단할 것이다.
다른 작가들에 비해 이중섭 작품의 감정은 쉬운 편이다. 이중섭은 탄탄한 데생력을 바탕으로 속도감 있는 필력을 구사하기 때문에 유화작품은 쉽게 따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위작은 원작이 있다. 위작자가 원작 없이 소재와 구도를 만들어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술품은 공산품이 아니기 때문에 작가들은 동일하게 그리는 것을 피하는 것이 상식이다. 특히 이중섭처럼 작가의 심리적 내면을 표출하는 표현주의 계통의 작가들은 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소재와 구도가 동일한 작품이 나오면 일단 그 자체로 의심을 해 보아야 한다.
공교롭게도 이 작품은 삼성미술관에 소장하고 있는 이중섭의 <부부>(그림1)와 구도와 소재가 거의 흡사하다. 그럼 왜 그동안 이러한 사실을 의심 없이 지나쳐 왔는가? 이 작품이 의심의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앞에서 밝힌 그러한 선입견들 때문이 아닐까? 잠시만이도 그런 선입견을 버리고 이 작품이 처음 발견되었고 가정하고, 몇 가지 기준들에 의해 이 작품을 재검토해보자.
속도감과 필력
물론 비슷한 작품이 있다는 것은 위작을 의심하게 만들지만, 이것이 위작의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는 없다. 바람직 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한 작가가 동일한 구도와 소재를 그리지 말라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작가의 필력은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부부>(이후 ‘부부2’로 칭함)는 우선 속도감과 필력에 있어서 치명적인 결함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필력이라고 부르는 붓의 속도감은 작가마다 고유하다. 필력은 작가의 고유한 심성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성격이 온화한 사람은 필력이 부드럽고, 성격이 격정적인 사람은 필력이 거칠고 활달하다. 타고난 성격이 쉽게 변하지 않듯이 필력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필력에 대한 연구는 작가 개성에 대한 연구이고, 작가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지름길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사인을 천천히 따라하면 비슷하게 그릴 수 있지만 그 속도와 강약을 따라 하기는 쉽지 않다. 그 작가의 정체성은 구도나 형태보다도 필력에서 더 결정적으로 드러난다. 우리가 미술사적으로 이중섭을 높게 평가한다면, 그의 인간적인 일화가 아니라 이러한 조형성을 보아야 한다. 이중섭의 필력은 동시대 다른 작가들에 비해 매우 빠르고 활달하다.
<그림3>에서 알 수 있듯이 오른쪽 하단에 있는 <부부2>는 선의 강약과 필력에 있어서 이중섭의 다른 작품들과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그림3> 이중섭의 다른 작품들과 문제작의 속도감 비교 다소 임의적이지만. 이중섭의 절정의 속도감을 10으로 볼 때, 대부분의 작품들은 8이하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부부2>는 속도가 5이하로 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림3> 이중섭의 다른 작품들과 문제작의 속도감 비교
작품 <부부>만 확대한 <그림4>를 자세히 보면, 속도감이 떨어지는 결정적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우리가 종이를 놓고 그림을 그릴 때, 일반적으로 위에서 밑으로 그려나가는 것이 상식이다. 또 <부부1>에서처럼 뒤에 있는 것을 먼저 그리고 그 위에 앞에 있는 것을 그려야 속도감을 유지할 수 있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선의 연결성이나 물감이 발라진 덩어리를 보면 <부부1>은 위에 있는 수탉을 먼저 그렸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부부2>는 수탉의 날개가 밑에 있는 암탉의 날개에 의해 끊겨 있다. 이것은 밑에 있는 암탉의 날개를 먼저 그렸다는 것을 입증한다. 위에 있는 수탉의 날개를 그리면서 중간에 선을 끊고 그 사이에 밑에 있는 암탉의 날개를 끼어 맞춘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다. 이러한 상식적인 순서가 무시된 어색한 짜 맞춤이 속도감과 필력을 둔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림4>왼쪽-부부1. 오른쪽-부부2
골격미
동양화론에 골법용필(骨法用筆)이라는 말이 있다. 골법용필이란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대상의 골격을 파악하여 그리는 것이다. 우리 몸이 뼈와 살로 이우어져 있듯이 모든 것은 단단한 것(양)과 부드러운 것(음)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다. 그림에서도 단단한 골격이 강하면 남성적이 되지만, 부드러운 면이 많으면 여성적이 되어 뼈 없는 문어처럼 형태가 흐느적거린다. 이중섭의 작품은 재료는 유화를 사용하고 있지만 필선은 동양화적이고, 골격미가 강한 것이 특징이다. 그런 면에서 그의 작품은 남성적이다. 그는 탄탄한 골격미를 바탕으로 대상을 자유롭게 변형시킨다. 이는 많은 데생훈련을 통해 도달한 것으로, 위작자가 따라하기가 힘든 부분이다. 따라한다 하더라도 껍데기를 따라하다 보니 약간의 차이가 엉성하고 치졸함으로 드러난다.
골격미의 관점에서 <부부1>과 <부부2>를 비교 분석해보자. <부부1>은 이중섭과 친분이 있었던 문인 김광균씨가 소장하고 있던 것으로 출처나 필치에 있어서 원작으로 보기에 문제가 없는 작품이다. <그림5>에서 위에 있는 수탉을 비교해보면 <부부1>은 수직으로 떨어지는 수탉의 움직임이 중력의 힘에 의해 자연스럽게 낙하하고 있다. 그러나 <부부2>는 전체적인 큰 움직임에서 볼 때, 꺾이는 각이 매우 어색하고 수직으로 떨어지는 중력의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또 좌우로 흐르는 선을 비교해보면 어떤 것이 자연스러운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중앙의 점선 부분은 뼈대와 뼈대가 만나는 힘의 집결지로서 중요한 부분이다. <부부1>은 꼬리에서 내려오는 선이 속도가 빨라지면서 두툼해진 몸통에 힘 있게 박히고 있다. 그러나 <부부2>는 꼬리에서 내려오는 선이 주춤거리며 속도가 오히려 약화되어 힘이 분산되어 보인다. 이는 미세한 차이 같지만 골격에 대한 이해가 없고 기술적으로 따라하다 보니 힘의 강약 조절에 실패한 것이다.
<그림5>왼쪽-부부1. 오른쪽-부부2
골격의 몰이해는 <그림6>의 오른쪽의 날개부분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난다. 점선 부분은 몸통과 날개, 그리고 다리가 만나는 힘의 집결로서 이곳에서 3개의 날개와 2개의 다리가 몸통에서 갈라져 나간다. <부부1>은 푸다닥하는 날개가 활달할 뿐만 아니라 2개의 다리와 양태가 분명히 다르게 묘사되고 있다. 즉 날개는 끝이 가늘어지고 다리근육은 끝이 뭉뚝해지면서 다리가 빠져나오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부부2>는 날개가 힘이 없이 쳐져 있을 뿐만 아니라, 대상에 대한 이해가 없어 날개의 선과 다리의 선이 구분되지 않는다. 특히 2개의 다리는 근거 없이 엉뚱한 허공에 달려 있어 골격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다음으로 힘의 집결지는 몸통과 다리를 연결하는 부분이다. <그림7>의 점선 부분은 몸통과 다리, 그리고 꽁지가 연결되는 힘의 중심지이다. <부부1>은 이 지점에서 필력이 강화되면서 두툼하게 처리되고 있지만, <부부2>는 이 지점에서 오히려 힘이 약화되고 있다. <그림8>의 다리 부분에서도 <부부1>은 점선 부분의 마디를 정확히 포착하여 골격을 잡아주고 있지만, <부부2>는 마치 고무줄 늘여 놓은 것처럼 힘없이 늘어져 있다.
<그림6>왼쪽-부부1. 오른쪽-부부2
<그림7>왼쪽-부부1. 오른쪽-부부2
<그림8>왼쪽 부부1. 오른쪽 부부2
회화성
회화성은 보다 종합적인 인상인데, 미술사가인 뵐프린은 회화성을 선적인 것의 대비되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즉 선적인 그림이 도안적이고 이성에 의해 치밀하게 계산된 것이라면, 회화성은 빠른 붓놀림과 붓자국, 즉흥적이고 우연의 효과에 의한 물감들의 얼룩지고 혼합된 덩어리, 격렬한 율동감 등이 어우러져 생기는 인상이다. 회화성 역시 이중섭의 유화작품들의 특징을 규정하는 중요한 특징으로 이것은 작품의 일회성과 생동감을 부여하는 요소이다. <그림11>에서 <부부1>의 날개부분을 보면 순간적인 붓놀림에 의해 생기는 변화들이 입체적이고 다양한 물감의 변화를 만들어 역동적인 회화성이 드러내고 있다. 그에 비해 <부부2>의 같은 부분은 매우 평면적이고 <부부1>에 비해 선적이다.
<그림11>왼쪽-부부1. 오른쪽-부부2
회화성은 형상과 배경에서도 드러나는데, 다시 <그림1>과 <그림2>를 비교해보자. <부부1>은 배경을 단순화하여 주제를 부각시키고 있는데, <부부2>의 배경은 수평선들이 기계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이렇게 배경의 기계적인 선들은 이중섭의 다른 작품에서 찾아볼 수 없는 비회화적인 부분이다. 그리고 배경선이 너무 살아있어 주제가 약해지고 조잡해 보인다는 것과 간과할 수 없다. 색채 역시 다른 이중섭 작품처럼 중화된 색채가 아니라, 원색이 너무 살아있는 것도 회화성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요소들이 작품의 격을 떨어뜨리고 난삽한 화면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림12>왼쪽-부부1. 오른쪽-부부2
얼굴과 사인
일반적으로 위작자들에게 얼굴과 사인은 묘사하기 가장 어려운 부분에 속한다. 왜냐하면 다른 부분은 선이 좀 틀어져도 큰 영향을 주지 않지만, 얼굴은 조금만 틀어져도 표정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매우 민감한 부분이고 속도를 맞추기 어렵다. <그림12>에서 <부부1>의 얼굴은 얼굴의 윤곽이 분명하게 묘사되어 있고, 체념한 듯한 수탉(이중섭)의 지긋한 눈매와 순수한 암탉의 구슬 같은 눈망울(부인)이 잘 대비되어 묘사되고 있다. 반면에 <부부2>는 아래 있는 암탉의 얼굴 윤곽을 잡아내지 못하고 있으며, 눈동자도 썩은 동태눈처럼 그려져 있다. 이중섭의 사인 역시 쉬워 보이지만 따라 하기는 쉽지 않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중섭의 작품에는 사인을 하지 않은 것이 많다. <그림13>을 보면 이중섭은 사인이 하더라도 글자를 회화의 선처럼 처리하여 배경과 조화되게 하고 있다. 그러나 <부부2>는 속도도 느릴 뿐 아니라 검정 색으로 진하게 되어 배경과 분리되어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그림13>이중섭 작품의 사인과 문제작의 사인
문제작들의 사례
이중섭의 위작 중에서 이정도 그린 작품은 무수히 많다. 이중섭의 전형적인 작품들은 수많은 모작이 나오고 있는데, 대개 원작을 보고 베끼거나 약간의 변형을 가한 것이다. 다음 작품들은 전문가들이 감정을 거쳐 이미 위작으로 판명된 작품들이다. 그러나 이 작품들도 위작자들이 잡히고 확실한 정황이 나타나지 않는 한 위작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이러한 작품들도 이중섭이 그렸을 가능성을 전혀 배재할 수는 없으므로 <부부2>와 마찬가지로 위작이라는 말 대신에 문제작이라고 부르겠다. 이 작품들도 원본이 없다면 식별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중섭의 대표적 소재인 소는 위작자들의 표적이 되고 있다. 과거 논란이 되었던 <그림14>의 문제작은 원작과 소재와 구도는 비슷하지만, 필력과 골격미, 그리고 회화성에서 수준이 떨어지고 있다. 특히 묘사하기 어려운 얼굴 부분에서 회화적이지 못하고 치졸하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원작에 비해 힘이 약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림15>의 문제작 역시 소재와 구도에서 비슷하게 나왔지만 자연스럽지 못하다. 이 작품은 붓의 속도감은 비슷한 수준에 와 있지만 풀어짐에 있어서 약점이 있다. 대상의 골격을 이해하고 있으면 붓의 강약이 적당히 조절된다. 그러나 문제작은 한결같이 강한 선들만 의존하고 있어서 딱딱하고 경직된 느낌을 주고 있다.
이중섭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그림16>은 가장 많은 위작이 나오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문제작은 거의 비슷하게 잡아내고 있지만 역시 강약조절에서 약점이 있고 골격이 둔탁하다. 그리고 <부부2>에서처럼 원작에 비해 사인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튀는 경향이 있다. 또 <그림17>은 다른 작품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원작에다 꼬리 부분을 <그림15>에 있는 황소의 꼬리로 바꿔놓았다. 다른 부분에 비해 꼬리부분의 교체가 용이할 것이다. 그러나 원작에 비해 꺾이는 각이 없어 둥글고 힘없이 처리되어 전체적으로 자연스럽지 못하고 힘이 약하며, 골격미나 회화성도 떨어진다.
<그림14>왼쪽-흰 소, 오른쪽-문제작
<그림15>왼쪽-황 소, 오른쪽-문제작
<그림16>왼쪽-흰 소, 오른쪽-문제작1
<그림17> 흰소 문제작2
소시리즈 외에도 이중섭이 많이 그렸던 <가족도>에서도 문제작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림18>을 보면 원작에 비해 문제작은 <부부2>에서처럼 배경이 조잡하고 산만하다. 또 아이들의 골격이 정확하지 못한데, 특히 밑에 있는 어린이의 몸통이 너무 늘어져 긴장이 없어졌다. 그리고 역시 필력의 차이가 있고 사인도 동떨어져 보인다. <그림19>는 문제작 치고는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위작이라면 창조적(?) 위작인데, 옆에 있는 두 원작인 <가족>과 <닭과 어린이>를 절묘하게 합성하는 모험을 시도하였다. 전체적으로 <닭과 어린이>를 모사하고 오른쪽에 있는 어린이 대신에 <가족>에 있는 이중섭 부인을 앉혀 놓았다. 그러다보니 연결부위에 있는 닭의 처리가 어색해지고 있다. <닭과 어린이>에서는 땅바닥에 앉은 어린이가 닭을 안고 장난을 치고 있고, 닭은 얼굴을 땅으로 떨어드리고 있다. 그러나 문제작은 어린이 자리에 부인을 앉히다보니 닭을 안고 있는 자세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보니 닭의 몸통을 처리하지 못하고 생략해버리는 창조성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그림18>왼쪽-두 어린이와 물고기, 오른쪽-문제작
<그림19>왼쪽-가족, 가운데-닭과 어린이, 오른쪽-문제작
허술한 감정문화
이러한 다른 문제작들에 비해 <부부-2>는 필력이 더 떨어지는 편이다. 그 이유는 <부부>는 소재의 형태가 간결하여 수정의 기회가 적고 일필의 힘에 모든 것이 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러한 문제작들과 더불어 <부부2>도 확실한 증거가 없는 한 위작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처럼 작품의 질적인 부분에서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면 위작을 의심했어야 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 작품의 출처는 1972년도 현대화랑 전시 중에 작고하신 한용구씨가 강북의 한 콜렉터로부터 구입한 4점 중 한 점이라고 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 당시에는 이중섭 작품이 비싼 편이 아니어서 지금처럼 위작이 적은 사실이겠지만, 그렇다고 위작이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왜냐하면 이중섭의 인기는 그가 작고한 56년부터 문인친구들에 의해 일기 시작했다. 1972년 현대화랑 전시는 이례적으로 줄을 서서 입장하는 진풍경을 자아냈다는 점도 당시 이중섭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인기 있는 작가는 언제나 위작이 있기 마련이다.
또한 악의는 아니더라도, 흔히 있는 일이지만, 이중섭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이 공부삼아 모사를 해 보았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중섭과 가까운 화가가 이중섭과 지내면서 장난삼아 그려보았을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 이러한 작품이 선물용으로 돌아다니다가 국립현대미술관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이 작품이 그동안 수차례 전문가 감정을 거쳤다고는 하지만, 당시에는 위작이 성행하던 시기가 아니기 때문에 역으로 감정도 출품작을 선별하는 정도이지 진위감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또 이 작품은 현대화랑 전시 기간 중에 등장한 것이어서 당시 도록에 실리지도 않았고, 이 작품에 대한 개별 감정이 어떻게 이루어 졌는지 알 수 없다. 당시 국립현대미술관도 전문가들이 운영하던 시기가 아니어서 이중섭 작품을 구입하고 기증받으면서 정식으로 진위 감정을 거쳤을 리가 만무하다. 그러다 어느 날 이 작품이 전시회에 등장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이중섭의 대표작으로 둔갑하여 각종 책과 논문에 소개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을 판단할 때 능력보다 지위를 중시하듯이, 그림을 볼 때도 작품의 질보다 작가의 이름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의 일반 관람객들이나 학생들은 걸려있는 작품을 거의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암기한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설사 이 작품이 이중섭이 그렸다 하더라도 국립현대미술관이 국내 최고의 전문가 집단이라면 작품을 선별하는데 질적인 부분에 있어서 신중을 기했어야 했다. 이 작품을 이중섭이 그렸다면 자기 작품을 보고 스스로 모방한 근사위작이다. 근사위작이란 작가의 혼이 담기지 않고 작가가 자기 작품을 보고 베꼈다는 것이다. 즉 필자가 2003년에도 주장했듯이 이 작품은 이중섭의 대표작이 아니라 ‘위작과 졸작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는 것이다. 만약 이 작품이 이중섭의 진품이라면 우리는 이중섭에 대한 평가를 달리해야 한다. 다른 작품이 없다면 몰라도, 개인전도 아닌 대규모 기획전에서 왜 우리가 이런 작품을 통해서 이중섭의 작품세계를 접해야 하는가? 우리 사회의 안전 불감증이 미술계에도 만연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필자는 이 글을 쓰면서 나의 직관을 논리화하기 위해 이중섭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연구를 하게 되었다. 이것이 비록 주관적인 의견이라 하더라도 이는 이중섭 연구에 발전적인 것이다. 물론 이글이 정당성을 확보하고 공감을 준다하더라도 인맥으로 얽힌 우리 화단에서 전문가들이 나의 의견에 공개적으로 동의를 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또 누가 나의 글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이와 다른 주장을 개진한다면, 이 또한 이중섭 연구와 감정문화를 위해 바람직한 것이다. 베르메르는 위작에 관한 미술사가들의 견해와 논문이 발표되면서 그의 화력을 재조명하는 기폭제가 됐고, 중요한 작가로 재평가 되었다. 우리도 이러한 문제제기를 개인적인 감정(感情)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성숙한 토론문화로 이어져 이중섭 연구와 감정연구의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광진/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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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작과 졸작 사이-이중섭작 <부부> (2005, 아트인컬쳐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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