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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칩 작가 분석노트- 장욱진(張旭鎭, 1917-1990)
장욱진이 타계한지 올해로 20년이 되었다. 사후 호암미술관(1995), 갤러리 현대(2001), 서울대 미술관(2009) 등지에서 회고전이 이어졌고, 생전에 그가 제작한 유화작품 721점을 한권의 책으로 묶은 카탈로그 레조네가 2001년에 출간되기도 했다. 이젠 비교적 안정감 있고 완만한 상승곡선을 그리며 한국미술시장의 블루칩 작가로 안착한 모습이다. 수퍼블루칩 3인방인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에는 약간 밀리고 있지만, 천경자, 도상봉, 이우환 등과 함께 다음 그룹을 이끌고 있다. 참고로 2009년 K옥션에서 <소녀와 새>(8호)가 3억 2천만 원에 낙찰되었고, 올해 서울옥션에서 <풍경>(변형4호)이 1억 7천만 원에 낙찰되었다. 아동화 같은 그의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살펴보자.
1. 미술사적 가치 ★★★★
장욱진이 한국미술사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은 해방 이후 근대성과 정체성의 접점을 나름대로 성공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1910년대 이후 한국미술계는 근대화의 요구에 의해 유화를 받아들였지만, 자생성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장욱진은 1947년에 김환기, 유영국, 이규상에 의해 결성된 신사실파의 동참하여 근대성의 문제와 한국성의 문제를 융합시켜 자생적 현대화를 모색하였다. 당시 장욱진의 화풍은 김환기와 가장 유사했고, 이들의 공통점은 자연과 일상에서 출발하되 표현할 때는 구상과 비구상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순수한 조형성을 추구함으로써 기존의 재현적 구상화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이들은 서양의 입체주의적 구성방식을 받아들이면서도 자신들의 정서를 토대로 한국적인 미감을 성공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김환기가 한국적 자연의 푸근한 미감과 색채를 시적으로 담아내고자 했다면, 장욱진은 관조적이고 명상적인 태도로 일상을 바라보며 특유의 해학과 낭만적 정서를 드러냈다. 또 김환기가 점차 거대한 스케일로 추상의 숭고함으로 나아간 반면, 장욱진은 끝까지 구상을 유지하며 단순성과 밀도에 대한 철학으로 작은 것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장욱진이 치밀한 회화적 밀도를 추구한 점은 폴 클레를 연상시키지만, 낙천적이고 관조적인 시선으로 상식적 크기와 위치를 역전시키는 민화적이고 유아적인 구성은 한국적 낭만주의의 전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미술사적 가치를 지닌다. 단 지나치게 비정치적인 성향으로 인해 양식적 영향력이 크지 않은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2. 의미론적 가치 ★★★★
시․서․화를 즐긴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장욱진은 어려서부터 불교적 집안에서 성장한 때문인지 그는 좌우 이념적 대립에서 자유로웠고, 경직된 현대사회를 살아가기에는 너무 낙천적이고 낭만적인 정신의 소유자였다. 해방직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일할 기회를 가졌고, 한동안 서울대학교 교수직을 지냈지만, 그는 사회적 격식과 정치적 권위하고는 거리가 먼 소탈한 사람이었다. 타성에 젖어 안주하는 것을 싫어하고 항상 자연과 동심에 머물고자 했던 그는 덕소, 명륜동, 수안보, 신갈 등지를 옮겨 다니며 술과 그림에만 전념했다. 그는 예술이 무한한 고독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생활의 단순화를 실천하며 무념무상의 경지에서 일상과 하나됨을 꿈꿨다. 그가 작품의 소재로 그렸던 해와 달, 나무 등의 자연과 그리고 소, 새, 개 등의 동물들, 여기에 무심한 눈빛의 인간들의 동화적 구성은 정치적이고 이기적인 현대사회의 삶에 대한 일종의 저항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저항의식이 아동화와는 달리 의미론적 가치를 이루는 지점이다. 그가 추구한 자연과 사물에 대한 무관심적 관조와 해학은 편협한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목적에 의해 획일화되고 시간에 쫓겨 본질을 잃고 정신없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과 의미론적 대립을 이루고 있다.
3. 소장가치 ★★★★
장욱진은 1930년대 후반부터 작고할 때까지 약 50여간 작품 활동을 하면서 큰 변화없이 일관된 화풍을 보여주었다. 자신의 양식이 형성되는 1950년 전후부터 1960년대 유화 작품들이 밀도가 높고 미술사적으로 중요하여 소장가치가 가장 높다. 1970년대 후반 이후에는 두터운 질감에서 벗어나 수묵화적인 표현으로 변화를 주지만, 변화의 폭을 너무 좁게 설정하였고, 나이를 반영하듯 치밀함보다는 여유로움으로 나아간다. 카탈로그 레조네가 잘 되어 있어서 비교적 위작의 위험이 적고, 전체적으로 작품들이 작지만 색감이 좋고 밀도가 있어서 큰 벽면도 감당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단순해 보이는 조형 이면에 불교나 도가사상에 대한 작가의 생활철학을 담고 있어서 쉽게 무너지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또 아직 미술사적으로 정립되지 않았지만, 한국적 낭만주의에 대한 연구가 진행된다면 보다 중요한 작가로 올라설 수도 있다.
<최광진/미술평론가>
(Art & Collector 2010년 5-6월호) |
장욱진 (Art & Collector 2010년 5-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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